2024년 10월 23일 수요일.
바람이 꽤나 쌀랑해졌던 날로 기억한다.
연기 및 스피치 레슨을 배울 수 있는 소모임에 가입하여 레슨을 처음 시도해보기로 한 것은
1. 내가 나의 불안이나 다른 여타 감정들을 보다 성숙하게 조절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2. 또 어쨋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해서.
그래서 레슨을 잡고 처음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 시작 전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는 매우 설레고 긴장도 되어 다리까지 떨렸다. 수업을 받기로 한 연습실에선 누군가가 뮤지컬 연기를 지도받으며 연습하는 것 같았다. 신기하고 흥미롭고 기대됐다.
그리고 처음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체격이 좋고 교양있으신 훤칠하신 분이셨다.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나 왜 연기 및 스피치를 해보고 싶은지에 대해 다시 한 번 털어놓으며, '연기를 하는 내 자신이 굉장히 오글거릴거 같고 민망할 것 같고 영 자신이 없어서,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수업이 된다면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며 초면부터 실례를 저질러 버리면서, 원래도 긴장을 잘하는 사람인데 잔뜩 힘이 들어가 어깨가 뻐근한 느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쿨하게 '개인의 사정이 다 있는 건데요 당연히 이해합니다'라며 수업을 시작하자고 하셨다.
쿨하게 받아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잘부탁드립니다'며 끄덕이는데 웬걸.
시작은 스트레칭이었다.
...?
아니 왜..?
목을 푸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칭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우다다 떠올랐다.
하지만 생각이 다 이어지기도 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한다는 습관을 가진 몸은 삐걱거리면서도 선생님을 따라 스트레칭하고 있었다. 팔다리몸통목, 그리고 되도 않는 상체 돌리기(이걸 어떻게 더 설명하지?)와 하체 튕기기(이것도?)를 하면서 뚝딱거리는 목각인형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게 웃기기도 한데 열심히 따라했다.
그리고 누워서 복식호흡을 하는 것으로 스트레칭이 마무리 되었다.
근데 이당시에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이때 스트레칭과 웃음, 그리고 복식호흡을 하는 시간이 있어서 잔뜩 굳어버린 나를 풀어 한결 편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이후 발성이 나아갈 방향(저 앞으로! 앞으로 쏘아 올리듯이!)을 감잡고는 발음이 틀리기 쉬운 자음 다섯 가지에 대한 글을 읽으며 소리내어 보며 그 특성을 숙지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ㅅ발음이 새는 편이었다.
실수. 선생님. 이렇게 ㅅ이 연달아 들어가는 단어들의 발음이 종종 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주의하는 방법(너무 신기하지만 선생님이 알려주신 선생님만의 비법이니 얘기안하는 게 맞는것 같다)을 알게 되고 다시 한번 염두에 두며 대본 '읽기'로 넘어갔다.
선생님께서 위의 두 개의 쪽대본을 주시고 읽어보라고 하셨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제멋대로 기억해버린 것 일지도. 왜냐하면 처음에 당연하게 시작해버린 국어책 읽기 중에 선생님께서 나를 잠시 멈추곤 '말한다'고 생각하고 해봐라, 라는 피드백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때 처음으로 '소리내 읽다'와 '말하다'의 의미 차이가 각인된 느낌이었다. 그동안은 두 단어가 가지는 의미 차이를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사용했었다.
이제는 소리내어 읽기는 문자 그대로 텍스트를 음성으로 출력만 하는 것.
말하는 것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독백하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어떤 상황 속에서 출력하는 상태.
이러한 의미의 차이가 분명하게 떨어져나가 기억에 새겨진 느낌.
그렇게 처음의 읽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대본 속에서 '말하고'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서 나는 점점 몰입했다. 대사 한줄마다 선생님께서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주시면서 나의 몰입을 도와주셨다.
그리고 나는 상상과 몰입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대본 속 '동원'이 된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인수인계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감정표현, 몰입이 좋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물론, 내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습관적인 부분들(긴장이든 무슨 이유로든 빠르게 말하기, 눈을 못마주치고 대사를 이어감, 시선 처리 등)은 한번에 고쳐지지는 않아 수차례 반복적으로 피드백 받았다.
아 내가 이랬구나, 라던가 난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으면서 그런 기본적인 의사소통 기술이 서툰 것에 대한 속상함보다는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연습을 거듭할수록 아주 쪼오오오오금이지만 점점 나아진다는 점에 신기함과 재미를 더 많이 느낀것 같다.
첫번째 쪽대본 읽기가 어느정도 진행된 뒤로, 다음 순서는 상황극(에뜌드, 혹은 에쮸드라고 한다 하셨다)을 하자는 갑작스러운 제안이 들어왔다.
최근에 가장 크게 느끼거나 기억나는 감정이 있는지를 물어보셨을 때, 현재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매일 같이 롤러코스터를 타던 내 기분을 얘기하니 고백하는 상황을 해보자고 하셨다.
와... 으아악... 으악. 악. 으어어억...
미치는줄 알았다. 안그래도 그 사람이 내게 가득하고 고백을 하느니 마느니를 고민하던 중에 고백하는 상황을 표현하게 되니 얼굴도 심장도 터질것만 같았고, 정리해뒀던 말도 다 어버버 정리가 안 되어 두서없는 말들로 나왔다.(나 과몰입은 진짜 너무 잘 하는 거 같다)
서툴지만 진솔하게. 표현해냈다.
혼자 머릿속으로 결혼까지 생각했던거 같다..ㅋㅋㅋㅋ
마찬가지로 말이 빠르다, 여전히 눈을 잘 못마주치는데 고백하는 대사의 순간에는 눈을 보고 얘기 잘 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후 또 다른 쪽대본 리딩을 시작했다.
이 쪽대본은 한 주임이 인력 부족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않아 갑갑한 상황에서 박 소장에게 인력을 요청하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상황에 몰입하면서부터 감정 표현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전히 속도+시선 처리를 피드백 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극은 무언가를 강력하게 건의하는 상황인데, 대본이 없고 무언가를 건의하는 상황이 잘 떠오르지 않아 엉망진창으로 했고 간절함은 느껴지지만 건의가 아니라 항의 같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정말 전반적으로 너무나 재밌었고 한달에 한번은 수업을 받기로 했다!
마지막일줄 알았는데 너무 재밌었고 나에게 도움도 많이 될 것 같고,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해주셔서 믿음이 갔다.
다음 수업은 이번주 일요일이다!
너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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