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기록/연기 스피치

연기 스피치 수업 - 두 번째

파티피플지선 2024. 11. 19. 10:06


2024.11.10.(일) 18:35
원래 6시 수업으로 잡았던 레슨인데, 내가 이전 일정인 학원 끝나는 시간을 잘못 알아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35분 늦게 시작했다.

너무 즐거운 시간이 되었을 텐데 아쉬워 죽겠다.
일단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날의 기록을 남겨보자.

(며칠이 지나 기록을 남기려니 레슨 순서가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35분 늦게 도착하여 헐떡이며 숨을 고르는 내게 선생님께서 오늘 스트레칭은, 레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생략하고, 빠르게 진도를 나가보자고 하셨다.

오늘은 거리감 있는 대화(써놓고 보니 이상하네)로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한쪽 구석에 앉은 나의 대각선 구석 쪽으로 의자를 가지고 가 앉으시면서 나의 근황을 물어보셨다.

별거 없기도 있기도 한 근황을 스몰톡을 하고 나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더니 지금 가방에 읽고 있는 책이 있으면 꺼내보라고 하셨다.

가방에 있는 책...
유니티 기초 어쩌구... 그 교잰데...


그래서 삐그덕거리며 '이책.. 학원 교과서인데요..' 라고 망설이니 그 책이라도 괜찮다고, 그걸로하자고 하셔서 일단 읽었는데.. 당황스럽고 웃겼는데 긴장도 됐다 ㅋㅋㅋ

유니티란게 뭔지, 유니티 설치하는 방법 뭐 이런 내용들이 적힌 교재를 말하듯이 읽어야하니까 당황해서 또 국어책 읽기로 우다다 스피드업을 시작해버렸던 것 같다.

천천히 해라, 선생님께 설명하듯이 말한다 생각하고 읽으라는 피드백이 왔고 선생님은 서두르는 나를 워워시켜주셨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공방샘은 배신감을 느끼시거나 '아니잖아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실거 같다) 학생이니까 곧잘 상황을 상상하고 몰입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어려워하니까 학교에서 수업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며 몰입을 도와주셨다.

- 그럼 이 교재의 텍스트 어미를 제가 임의로 변화시켜서 읽어도 되는 그런건가요?

-그럼요. 아주 좋습니다!


이 대화 이후 나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내키는대로 교재를 읽어 나갔다.

흠...
유니티 수업을 하는 상황이라...
청중들이 잔뜩 이 좁은 연습실보다 큰 공간을 가득 채운 상상이라...
정보 전달이 목적인 그런 발표 상황...

연기 수업보다는 스피치 수업에 가까운 레슨이었다. 가상의 청중을 상상하니 눈 앞이 좀 아득해지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목소리를 내는 목표와 대상이 명확해지니까 멀리 앉은 청중까지도 들리게끔 소리를 키우려고 배에 힘이 더 잘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초반에 갈피를 못 잡았을 때는 당황한 게 많이 보이고 속도도 빨랐는데 차분하게 대중을 상대하는 것처럼 하니 잘하더라- 칭찬해주셨다 (히히)

그리고 잠깐 쉬는 시간 뒤에는 일전의 그 고백하는 상황극 속의 짝사랑 상대와 진중한 대화를 하는 상황극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선생님께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상황을 간략하게 묘사했고, 선생님은 그사람을 연기하면서 나와 함께 대화를 했다.

선생님이 연기한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는 결이 달랐지만 비슷했다. 이야기하는 것에 몰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상황극이 이어졌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내 습관 같은 행동들도 나왔던거 같고...

상황극 후 선생님께서는 나와 엄청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 게 정말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내가 상황에 몰입하는 능력이 좋은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셨다.(역시 난 과몰입에 소질이 있다)

지난 시간에도 했었던 인력 요청 건의 대본도 다시 읽었다.

근데 야호, 잔뜩 칭찬받았다!
발성이 좋아졌다는 칭찬 하나!
그리고 천천이 또박또박 잘 읽았다는 칭찬 하나!
감정 표현 몰입도 여전히 좋다는 칭찬 하나!

이렇게 잔뜩 칭찬 받았는데! 아마 이날 내가 피곤한 상태여서 몸이 피로로 다 늘어져 있는 채로 별 생각 없이 긴장하지 않고 말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읽기에 너무 집중했는지 눈은 거의 못 마주치면서 말하기식이 아닌 책읽기 식으로 읽었지만 엄청 기분 좋아서 셀프 물개박수했다 ㅎㅎ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연애의 온도의 상황 몇 개의 대본을 받았고 그 중에 2개를 해보게 됐다.

나는 이 대본을 읽기 전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상황은 주인공 영이 동희에게 돈 내놓으라는 장면이다.

나는 이 대본을 또박또박 읽으면서도 너무나도 유치한 상황에 어쩔 줄 모르고 코를 차는 코웃음을 내며 대본을 읽었다. 정말 소위 '더럽고 치사해서' 더는 안 보고 싶은 상황에 돈 내놓으라고 간 게 유치해보이기도 하고, 그만큼 경제적 위기인가 싶기도 하고, 사랑이 그렇게 사람을 치사하게 만드는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대화 내용이 너무 유치하니까 자꾸 웃음이 났다.

이제 이걸 내가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영이다.
나는 지금 동희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할 참이다.
나는 지금 동희한테 따박따박 따질 준비를 잔뜩 해왔다.

읽고 나서 선생님께 '지선님, 따져본적 없다는거 거짓말이죠? 따져본 적 있죠?'라고 하셨다.

물론 기억을 되돌이켜보면 따져본적이 없는건 아닌데 말발도 별로고 잘 안하려고 하니까 자신없어 했던 내 모습과 대본을 읽을 때의 내 모습은 달랐나보다.

우와 이거 엄청난 칭찬인가 싶어서 기분이 좋았다 ㅎㅎ

그리고 '읽을 때'의 대본을 보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읽어야한다는 부담이 덜해졌는데, 이건 수업 시작즈음에 읽은 유니티 책 덕분이었다.

어미를 임의로 변형시켜도 된다는 그 한 마디가, 나를 매우 편하게 해주었다.



다음으로 읽은 씬은 같은 직장을 다니던 영과 동희가 초반에 헤어졌을 때, 영의 새로운 관심 대상이 된 남자가 회식자리에 나온다길래 영이 회식에 나온 줄 알고 마주치고 못마땅해 하는 동희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유치했다.
-요. 존대를 강조하면서, 놀리는듯 한 말투로 영을 비꼬는 동희의 마음 속에 얼마나 엉켜버린 실타래가 있는걸까.

이 대본은 영으로 읽고 나서 내가 동희가 된 것처럼 읽어보기도 했는데 뭔가 남자를 연기하려고 한 것처럼 느껴졌다는 피드백을 받았는데..ㅋㅋㅋㅋㅋ 아마 내가 선생님이 연기한 모습을 따라하려고 한 게 그렇게 보였진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읽은 씬은 영이 동희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씬.

내가 고백을 하느냐 마느냐 망설이는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더 공감되고, 그래서 더 (한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느껴진 씬이었다.

동희 너 이 ㅅㄲ..네 이놈...
짜장면 그만
쳐먹..적당히 좀 먹으라고...

연기하는 내내 깊은 빡침이 올라옴과 동시에 갑갑하고 떠 어떻게든 '결혼하자'는 말을 전해야 하는 영이 조금 처량하기도 했다. 아니 이런 놈이랑 결혼하자고 내가 결심을 한 게 맞나 현타 왔을 듯..

그래서 대본 리딩할 때 그런 감정들을 상기하며 읽어주지 않았으면 나도 모르게 대본에 없는 '적당히 좀 먹고 듣지 그래'를 애드립으로 내뱉을 뻔 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끝나기 직전 즈음 읽은 대본이라 마무리한다고 피드백은 잘 기억 안나지만 좋은 느낌의 평이었던 것 같다!


오늘도 너무 재밌었다!
35분 날린게 너무너무 아쉬울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어서 다음부터는 시간 관리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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