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유치원 때다. 무슨 사립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이었는데 초등학교로 이동해서 한컴타자를 처음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검은 화면에서부터 파란 화면을 지나 떠오른 한컴 타자가 낯설었는데, 내 옆에 앉은 애나 어느 다른 곳에 앉은 애는 너무나 능숙하게 타닥타타닥 타자를 쳐대서 나는 뭐랄까, 무능감에 울어버렸던 거 같다.

또 얼마 지나지 않은, 유치원에서 초등학생 저학년 사이의 시절에, 친구 따라 가입한 무슨 아이돌 커뮤니티 계정이 해킹되어... 내 계정으로 누군가 그 아이돌 욕을 잔뜩 써놨고 나는 영문도 모르고 울기만 하고 수습은 아빠가 다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난 사실 컴퓨터가 무서웠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회복력이 좋은건지, 그 시절이 워낙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살기는 어렵기 시작한 시점이었던 건지, 나는 얼마 안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게 됐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께서 내가 게임을 하던 말던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고 오히려 이왕 게임을 할거면 제대로 된 게임을 하는게 낫다 여기신건지 해리포터 게임이나 여타 발매된 시디 게임들을 사주시기까지 하면서 게임하는 것을 크게 터치하지 않으셨고, 나는 그 게임들을 신나게 했던 것 같다.

컴퓨터는 편리하니까. 즐거우니까.
딱 그정도로만 쓰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러다 아마 내가 학업에 집중해야할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 게임과 컴퓨터는 나쁜 것이 되었던 것 같다.

공부하지 않고는 하면 안 되는 것.
공부를 방해하는 것.
중독되는 것.

그런 것이 되어 부모님께 혼도 많이 나고 갈등도 많아지고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무렵에 CSI 드라마가 유행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15세였는지 19세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과학수사와 정의감에 호기심을 가진 내가 그 드라마를 같이 보는 것을 허락해주셨던 것 같다. 물론 잔인한 장면이나 노출이 많은 장면 같은 것은 눈을 가려주셨던 거 같다.

그런데 그런 잔인한 장면이나 상황보다 더 섬뜩하게 느껴졌던 내용들은, 중간중간 범죄자들이 컴퓨터로 해킹을 하고 내가 사용하는 기술들이 내 통제를 벗어나 나를 협박하는 상황들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과 편리함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던 나는 두려움에 집어삼켜지기도 했다가, 편리함에 도취되기도 했다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 '미지'의 존재에 대한 탐구심과 정복욕을 태우는 시점이 찾아왔던 것 같다.

물론 그 불길은 오래가지 못했다.

컴퓨터가 0과 1로만 이야기한다는데, 도대체 그게 어떻게 문자나 기호나 이미지로 표현되는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왜 계산기(computer)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었다.

나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론을 잘 따라가지 못 하는 부류였다.

과학을 공부할 때도 그 과정이 머릿속에서 상상되어 진행되면 이론적인 이해와 응용이 가능했지만 그 상상이 모호하거나 명확하게 구체화되지 않으면 이해도 응용도 안 됐다. 이를테면, 원자라는 것이 핵이라는 입자와 전자라는 입자로 구성되었다는 내용을 상상하여 실체화 시켜서 구체 주변을 엄청 작은 점이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으면, 그저 까만 문장은 글자고 흰 배경은 종이로만 이해되는 그런 상황이란 말이다.

그래서 컴퓨터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하라는대로 따라해서 'Hello World'가 출력되는 것은 신기했으나,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건지가 이해가 되지 않으니 앞이 보이지 않는 물속에 잠겨 벽을 두드려가며 길을 찾아야하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끼고 멈춰섰던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이 아닌가보다 했었다.

하지만 기술은 계속 발전해 갔고, 우리 생활을 편하게 해주면서도 온갖 범죄와 사기에 사용되는 현실이 지속적으로 나의 자유로운 영혼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렸고 나는 감시받는 다는 그 느낌이 너무 싫어 상욕을 하면서

'언젠가는 내가 꼭 그놈의 해킹, 그놈의 컴퓨터 정복하고 말겠다'

는 다짐을 했다. 이 시대에서는 나를 보호할 무기와 방패가 정보와 보안이므로.

그래서 나는 결코 이 기분을 놓치 않은 채로, 살 줄 알았는데 수능 입시에 집중하다 어떻게 붙은 대학에 가서 생활하는 동안 이 찝찝한 기분을 달고다니면서 다른 단과대학에서 다른 전공을 하고 다른 이중전공을 하면서 졸업을 하고 방황했다.

그러다 오버워치란 게임을 하게 되면서 게임 개발에 흥미를 가지면서, 아 개발자라는 진로도 내게 맞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깨달음 같은 탄식을 뱉으며 무작정 게임 회사에서 일해봤다. 배운것도 많았지만 내가 더 성장해서 큰 물에서 놀려면 이걸론 부족했다.

개발 공부를 보류하면서 다른 곳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고등학생들과 교류할 일이 있었고, 그 아이들은 다수가 공과대학 지망생이었다. 이들이 반도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할 때 내가 무언가라도 답을 해줘야하니 나는 공부를 했고, 이 외에도 학점은행제를 통해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려는 시도를 했다.

인생이 참 재밌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느 순간 0과 1로 대화하는 컴퓨터의 원리가 머릿속에서 별개로 분리되었던 구슬들이 꿰어지며 목걸이로 맞춰지듯 번뜩이며 이해가 되었고, 나는 이제야 도전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달려들기로 마음 먹었다.

어쩌면 나는 더 전부터 이것을 하는게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늦었음에도 지금부터 해도 절대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분명 부족한 점이 있지만, 내겐 그걸 고쳐나갈 의지와 나아갈 방향과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이제서라도 이 길을 향해 나아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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